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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는 제가 활동하고 있는 사진동호회의 자유게시판에 올렸었던 팩션(Faction) 성격의 글입니다. 벌써 20년이나 되었지만 기념으로 제 블로그에 기록하여 보관하기 위해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
이전 이야기 : 과거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 E01
에피소드. 02
데이타백을 구하고 며칠이 지나 일요일이 되었다.
혼자 카메라 들고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산 몇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다리가 아픈걸 보니 아무래도 좀 많이 돌아다닌 듯하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돌아오려고 했지만 일몰이 멋진 가을산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담아두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념촬영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기념 촬영할 땐 역시 날짜가 사진에 찍히면 좋을 듯해서 며칠 전에 구하게 된 데이타백을 켠 후 날짜를 세팅하려는데 날짜가 나오는 LCD 부분의 숫자가 흐릿하게 보이며 금방 꺼질 듯하였다.
혹시 배터리가 다 되었나 싶어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끼웠더니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숫자가 보이며 동작은 되었지만 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면 새 배터리로 교체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카메라에 새 필름을 넣고 삼각대에 거치하였다.
셀프타이머로 맞춰 놓은 다음 이런저런 자세 잡아가며 몇 컷을 찍다가 문득 데이타백의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끼우면서 날짜를 안 맞춘 것을 알게 되었다.
" 이런, 배터리 뺏다가 다시 끼우면서 날짜를 안 맞췄구나. 역시 평소 사용하지 않던 장비라서 그런지 이런 실수를 하네... "
그렇게 혼자 자책하며 다시 날짜를 맞춰서 남은 필름 컷을 다 채우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았다면 바보 같아 보였을지도...
삼각대가 세워진 곳과 내가 가서 자세 잡은 곳과의 거리는 대략 10미터 정도였는데 셀프타이머를 10초로 맞춰 놓은 다음 셔터 버튼 누른 후 재빨리 뛰어가서 자세 잡아 찍고 다시 카메라로 뛰어와서 셔터 버튼 누른 후 또 10미터를 뛰어가서 자세 잡아 찍는 그 과정을 무려 10번 이상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에는 숨이 차고 다리가 풀렸는지 미처 자세를 다 잡지 못 한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찍혀 버렸으니... 결국 남은 컷은 포기했다.
이것도 추억으로 남아주리라 믿으며 촬영한 필름을 꺼내어 필름통에 넣고 날짜와 장소 등을 기록한 다음 카메라와 함께 가방에 넣고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왔다.
나는 평소에 사진 찍고 돌아오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필름을 맡겨 놓고 집에 가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산행을 해서인지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바로 집으로 와 버렸다.
역시 집이 좋다.
카메라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샤워하고 나와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였고, 내 방으로 와서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카메라와 렌즈, 필름 등을 확인하고 간단한 정비도 했고 데이타백의 배터리까지 후다닥 교체하였다. 역시 내 손은 빠르다. 컴퓨터는 느린데...
데이타백용 배터리는 CR2025였지만 마침 집에 CR2024가 있어서 넣어 보았는데 다행히 잘 된다. 어차피 두께 차이와 용량 차이일 뿐이니 접점만 잘 붙으면 사용하는데 문제없을 것이다.
그 사이 부팅이 완료된 컴퓨터 앞에 앉아 사진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하여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 길에 단골 사진관에 들러 현상/인화를 맡겨 놓았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나가서 찾아왔다.
4R크기로 이쁘게 잘 뽑아진 사진을 한 장 한 장 감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사진이 나름 잘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만의 착각이겠지만.
-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잘 찍었잖아! 거의 다 적정노출인 듯하고 구도도 나름 안정적으로 괜찮아 보이고... 흠! 내 실력도 꽤 늘었는 걸!
그러던 중, 마지막에 셀카로 찍은 사진을 꺼내어 보는데 앞부분의 몇 컷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 00년 1월 1일? 아~ 내가 데이타백의 배터리를 뺏다 끼우면서 날짜 안 맞춰서 이렇게 찍힌 거군! 어? 그런데 왜 내 모습이 안 보이지? 분명 타이밍도 괜찮았고 위치도 잘 잡았을 텐데.
하지만 사진 속에 나의 모습은 없었고 어제보다 더 어둑한 하늘과 붉은 태양, 그리고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들만 있을 뿐이었다.
몇 장을 더 넘겨 보니 다행히 날짜를 다시 맞춘 곳부터는 정상적으로 멋진 풍경과 그 속에 서 있는 나의 모습과 날짜까지 제대로 나와있다.
혹시 사진관에서 다른 사진이 섞여 들어왔나? 라는 생각을 하며 따로 빼서 봉투에 담아 가방 안에 넣어 두고 멋진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모니터 옆 문서 클립에 끼운 다음 오후 일과를 즐겁게 시작하였다.
나는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닌다. 회사 갈 때도, 출장 갈 때도, 놀러 갈 때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언제나 카메라는 나와 함께 한다.
오늘은 출장 가는 날,
역시 카메라를 갖고 온 나는 출장 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조금 있어서 인근 공원에 주차를 한 후 카메라를 꺼내어 주변에 보이는 풍경을 이리저리 찍어보고 있었다.
공원에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찍어 보기도 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가족들을 찍어 보기도 했으며 운동 나온 듯 한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괜히 눈치 보며 슬쩍 찍어 보기도 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공원 옆 도로로 스포츠카 한대가 지나가는데 엄청 멋지고 비싸 보였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강력한 붉은색으로 더욱 멋짐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며 난 언제쯤 저런 차 한번 타 보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손은 카메라를 들고 지나가는 스포츠카를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 전에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데이타백을 켜 놓은 것이 생각나서 끄고 다시 찍으려는데 날짜가 잘 못 맞춰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00 10 21 이면, 2000년 10월 21일이다. 오늘이랑 날짜만 같고 연도가 다르게 세팅되어 있었는데 아마, 날짜 맞추는 기능을 확인해 보다가 잘 못 맞춰놓은 듯했다.
이미 스포츠카는 사라지고 없어서 날짜를 정상적으로 맞춘 다음 데이타백을 끄고 나서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주변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조금 더 보다가 시간이 다 된 듯하여 다시 출장지로 향하였다.
출장업무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필름을 맡겨 두었었는데 퇴근시간 무렵에 연락해 보니 다행히 인화되어 있다고 해서 집에 오는 길에 찾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먼저 켜게 된다. 컴퓨터가 부팅될 동안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손발 세수만 하고 나와서 컴퓨터 앞에 앉아 사진동호회 사이트에 접속해서 새로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며 댓글도 달면서 나름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사진갤러리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회원이 스포츠카 사진을 한 장 올려 두었고 추천수도 제법 되는데 대화방인 것처럼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 오늘 찾아온 사진이 생각났고 사진 속 스포츠카를 보여주며 차종도 물어볼 겸 대화에 참여하려고 가방에서 사진 봉투를 꺼내었다.
사진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았지만 스포츠카가 찍힌 사진은 안 보였다.
- 틀림없이 셔터 버튼 눌렀는데. 그렇지. 이건 잘 나왔잖아. 여기 예쁜 여자분도 잘 나왔고. 분명 이 여자분 사진 다음이지 싶은데 왜 없지? 그리고 내가 찍지도 않은 이 차는 또 뭐고... 차 앞에 저건 사람인가?
사진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흐릿해서 사진 속 상황을 명확하게 구분하긴 어렵지만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 듯하고 달리고 있는 차 앞에서 어떤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 이 사진은 뭐지? 이거 지난번처럼 사진관에서 사진 잘 못 넣어 놓은 건가? 필름에서 바로 스캔 떠 봐야겠군.
나는 필름을 꺼내어 스캐너에 넣은 다음 스캔 프로그램에서 미리 보기를 누르니 스캐너의 불빛이 번쩍이고 잠시 후 미리 보기 썸네일이 떴다. 그중에서 스포츠카 사진을 찾아보려는데...
- 어? 정말 내 필름 안에 저 사진이 있네!
좀 전의 그 이상한 사진이 분명 나의 필름에 들어 있었다. 내가 찍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다시 사진을 보니 아랫부분에 날짜가 찍혀있었다.
2000년 10월 21일...
찌릿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며 소름이 돋는다. 내가 데이타백에 잘못 세팅해 둔 바로 그 날짜가 사진 속에 선명하게 프린팅 되어 있었고 사진 속 위치도 느낌은 좀 다르지만 분명 내가 그 날 있었던 공원 앞 도로가 맞기 때문이다.
문득 얼마 전 산에서 찍은 사진 중에도 이런 사진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보관해 두었던 그 사진을 꺼내 보았다.
분명 같은 장소인데 날짜가 다르고 사진 속 내용이 다르다. 그렇다면 혹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살짝 흥분되기도 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사진을 보다가 가방에서 카메라를 조심스레 꺼내어 데이타백을 살펴보는데 이 데이타백의 전 사용주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 나중에 겪게 될진 모르겠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다가 좀 특이한 현상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현상을 겪게 되면 꼭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걸 사용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됩니다. '
그리고 그런 일을 겪게 되면 연락 달라고도 했던 것 같다.
혹시, 이런 일을 말씀하신건가?
확신은 할 수 없다. 사진을 직접 보고 있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아직 확신하긴 이른 듯 하여 좀 더 확인해 본 후 연락하기로 결심하고 새 필름을 꺼내어 카메라에 넣은 다음 데이타백의 날짜를 바꾸기 시작하였다.
다음 이야기 : 과거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E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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